개발자로 지내오면서
대학교를 다니며 야간에 전자공학을 배우며 인생의 목표를 찾기보단 재미를 추구하던 시절에 만난 프로그래밍 언어 수업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네요. 이 글은 정보전달이나 유익한 글이 아닐 수도 있어요.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이름 모를 변덕 때문에 시작한 글이에요.
저는 항상 변덕이 많았어요.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고, 나쁘게 말하면 쉽게 흥미를 잃는 편이었죠. 이런 나를 발견한 건 최근이에요. 지금까지는 저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어요. 사실 지금도 그렇고요. 누군가에게 비춰진 내 모습을 보고 알아차린 거죠. 그래서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해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해요. 그런데 프로그래밍은 좀 달랐어요.
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“왜?”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.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“왜?”라는 질문은 많이 했지만, 그 질문이 “알고 싶다”까지는 가지 않았어요. “무언가를 알고 싶다”는 생각이 6년째 저를 움직이게 만들었어요. ‘개발자 원칙’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 중에 엔지니어는 왜?라는 물음이 나오지 않을 때 끝난다는 말이 있더군요.
요즘엔 왜?라는 물음의 빈도가 낮아졌어요. 개발 초기에 공부할 때 개념과 코드가 맞물리면서 실제로 동작하는 것을 이해하고 성취감을 많이 얻었죠. 처음에 많이 얻은 탓일까요? 나의 색이 점점 바래지는 것 같아요. 회사에 다녀서 그런가?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아요. 오히려 체계적으로 일을 완수하는 것을 배운 고마운 장소예요. 돈도 주고요.
돌이켜보면 처음에 개발의 흥미를 느끼고 시작한 건 맞아요. 3학년 때 코로나가 터지고 개발자가 유행이 되면서 조급해졌나 봐요. 대학 4학년이 되면서 “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”는 마음에 나를 돌아보지 못했어요.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되돌아보지 않았어요.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. 지금도 개발이 재미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. 그리고 인생에서 추진력 있게 활동한 건 취준 활동이 두 번째였어요. (첫 번째는 컴퓨터가 망가졌을 때 중고 컴퓨터를 구할 때였어요.)
이제 2년째 달려오면서 변하고 느낀 것이 있나 봐요. 좀 더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고 말하기도 그렇고, 실력이 좋아졌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람이 되었어요. 유튜브에서 공시 공부하는 사람들의 다큐를 본 적이 있어요.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애매한 재능이라고 하더군요.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하는 그 능력. 지금 와서 공감해요. “아, 나는 애매한 재능인가 보구나”라고 생각해요.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“왜 최선을 다해보지 않고서 그래?”라고 말하겠죠. 맞아요. 그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거예요.
생각만 하고 적어놓기만 하거나, 로컬에서만 끄적이다가 GitHub에 처박아두기, 유튜브 클론 코딩 똑같이 따라하기. 사실 저는 배포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.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한 건 졸업 작품뿐이에요. 회사에서는 묻어가는 사람이 된거 같아요.
과연 이렇게 해서 내 커리어를 좋게 가져갈 수 있을까? 내가 원하는 개발을 할 수 있을까? 나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? 이런 물음이 계속 들었어요. 처음 프로그래밍의 호기심은 사그라들고 세속적인 고민을 시작하니 힘들더라고요. 그래도 이런 고민도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죠?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하고 있어요. 이 답을 스스로 내리는 순간은 언젠가 찾아올 것 같아요.
훌륭한 개발자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프로그래밍 언어는 도구라고 하더군요. 그 말을 많이 들었는데도 이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어요. 스스로 어리석다고도 생각해요. 이런 생각보다는 조직에 기여하고 더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. 그런데도 이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.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은 불안했어요.
이러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소화기로 진화하는 것 같아요. 회사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익숙해지니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어요. 처음의 열정은 사그라들고 익숙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슬퍼요.
그래서 살아가는데 생각을 하면서 살고 목표를 세워보려고요. 첫 번째로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. 많은 사용자가 쓰는 서비스를 만져보고 싶고, 다양한 동료들도 만나보고 싶어요.
두 번째로는 프로그래밍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몰입했으면 좋겠어요. 더 좋은 방법, 편리한 방법을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요. 목표를 세웠을 때 끝을 내보고 싶어요. 서비스 회사, IT 대기업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요. 그들의 방식을 배워보고 싶어요.
마지막으로 내일을 살아갈 저에게 화이팅한다고 전해주고 싶네요. 요즘 정주영 회장님의 명언이 마음에 와닿네요. “해봤어?” 이 말을 생각하면 이상한 용기가 생겨요.
이상 개발자로 지내면서 느낀 점과 현재 상황을 한 번 글로 돌아봤어요. 잠시나마 심심함을 달랬다면 좋겠네요.